2025/02 15

[자작시] 효월보고서(曉月報告書)

효월보고서(曉月報告書) 과거와 미래의 몽한 경계가거뭇거뭇 드리울 때 그제야 노인은부스스한 머리를 군청 모자로 푹 눌러 가리고빗자루 한 손에 쥐어 옹그라진 몸 이끌며거리로 나온다 노을빛 머금은 가로등은태양 아니지만고고한 온정 달빛이 조각조각 부스러져월백의 잔해가 소복이 쌓인 밤이다 노인의 비가 사르르 지면에 스치면사람들이 잔뜩 젖어 뚝뚝 흘리고 간 눈물땀이 흩어져 오른다.반짝 달빛 섞여 올라간 그것은이제는 유려하게 하늘을 장식하는 누군가의 꿈 노인은 사악삭 흰 눈으로 덮인 거리를 쓴다사악삭 누군가가 걸었을 달길을 쓴다사악삭 모두가 지나갔을 달밭을 쓴다 군청 모자 벗어 눈가의 것을 스윽 닦는다노인의 희읍스름해진 머리가 달을 닮아간다 가로등 빛이 보유스름해지고저 멀리 오늘이 슬렁슬렁 일어나면노인은 누군가의 시..

나무와 고독

나무는 오히려 겨울에 초라하고 앙상한 뼈대만 남는데 왜 사람은 풍요의 계절이라는 말에 모순되게 가을에 고독을 느끼는 것일까. 나무는 겨울보다 가을에 더 운다. 가을에 울어서 겨울에 울 힘이 없다. 가을에는 우수수수 울지만 겨울에는 스스스스 속삭이듯 운다. 그마저도 날카로운 바람에 잘려 사람들의 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가을에 넘쳐나는 나무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의 빈 공간을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이리라.

초조함(씀 어플 2월 3일 낮 주제)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dFohf_GUZJ0 초조함  학기말과 학기초의 기분이란 대체로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칼로 썩둑 썰어놓은 듯 분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사 깔끔하게 나누어 떨어진다면 살아가기 조금 더 편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흑백논리의 흑백조차 널따란 색 스팩트럼의 끝과 끝이지 결단코 뚝 때어낸 부분이 아니다. 말하자면 삶은 연속성인 것이다. 언제부터가 인간의 시작인지 배아, 태아 그리고 인간의 구분조차 항상 논란인 것을. 우리는 생명의 시작부터가 혼잡한 흐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종업식, 겨울방학, 봄방학, 개학식의 단계 그 한 중간에서 우리의 마음은 혼재되어 있었다. 학기말의 시원섭섭함과 학기초의 불안한 ..

[자작시] 소극적 지식인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H9m6mfeeakU 소극적 지식인 역겨움이 몰려와 안과 밖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누구를 향한 역겨움인지 분노인지 실망인지 모를 감정으로 뒤덮여버려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뿐이라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도 기침도 아니고 바른말은 더더욱 아닌 헛구역질뿐이다. 육두문자 내뱉으면서도 그게 결국 대상이 누구인지 모호해져 스스로의 가슴을 마구 찌른다. 울컥 눈물이 솟구치지만 그 눈물 마저도 누구를 위해 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져버려 위선뿐인 모습에 서둘러 눈물을 닦아버리고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척 녹아버린다. 녹아들면 녹아들수록 본래의 형체를 잃어가 처음의 그 때탄 순수함은 어..

나는 네가

나는 네가 꽃은 모든 것을 품는땅이 되고 싶다.땅은 이파리를 스치는바람이 되고 싶다.바람은 빛으로 쓰다듬는태양이 되고 싶다.태양은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강물이 되고 싶다.강물은 열정을 다하여 솟아나는꽃이 되고 싶다. 나는 네가너는 내가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다.  동시 느낌으로 지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적은 시입니다.